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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

몇 주 전에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주소를 확인하고 ‘아, 대충 거기겠구나’하고 집을 떠나 길을 나섰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고 이 동네에서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곳이니까 어렵지 않게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지도가 잘못되었는지 주소를 잘못 안 것인지 그 근처를 몇 바퀴나 돌았는데도 도통 목적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집스러운 태도를 포기하고 그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 순간 하나님께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보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짧은 기도가 마치자마자 저기서 아주머니 한분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길을 물었습니다.

 

다행히 그 아주머니는 그 동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주머니의 발음과 표현이 말입니다. 오른쪽이라고 하면서 손은 왼쪽으로 가르치고 있었고 이따금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른 외국어 같은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아주머니는 한국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쪽의 여성분이었고 아마도 한국으로 이사를 왔거나 결혼하여 온 사람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아주머니가 설명해준 길을 잘 이해했습니다. 아울러 그 목적지에 시간에 맞추어 잘 도착했고요. 다만 그 외국인 아주머니가 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가 저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그 짧은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주머니가 어떤 삶의 굴곡이 있었기에 자신의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으며 또 어떤 만남과 이야기를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바로 그 자리에 나를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우리 역시 지금 여기에, 저 아주머니처럼 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향을 떠나 여행하는 나그네와 같이 이 장소가 우리의 진짜 고향도 아니고, 이 언어가 진짜 우리의 모국어도 아니며, 이 관계가 우리의 진짜 가족이 아닐지라도,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길에 어떤 역할을 하고자 와 있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예수님의 길에 어떤 역할로 서 있는지를 물어 보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언어와 강한 건강과 많은 재산을 가지고서도 그분의 길을 막고 방해하며 거치게 하는 사람으로 있는지, 아니면 어설픈 언어와 약한 건강과 부족한 재산으로도 예수님의 길을 열어 드리고 동행하며 따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제가 하나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가 답답한 환경과 어려운 조건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요한처럼,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처럼, 그분의 십자가를 잠시라도 대신 지고 올라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잠시 전에 한 남자 분이 오셔서 차비가 꼭 필요하다며 돈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알면서도 그에게 제가 가진 전부를 주고 기도했습니다. 혹시라도 이것이 상가 교회의 젊은 목사를 속이는 사기라 할지라도 그에게 하나님께서 찔림과 감동을 통해 변화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총총히 사라져 가는 그 형제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민족의 위기 속에서 모르드게가 에스더에게 했던 말이 조금 다르게 각색되어 떠오릅니다.

 

“네가 목사의 자리에 있는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서 4:14 강산목사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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