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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만한, 받아주실만한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선물을 받기 전보다 더 불행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정말 먹을 것조차 변변치 못할 때, 잘 알지 못하는 한 선배 목사님께서 어쩌다가 생긴 것이라며 돼지고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주셨습니다. 저는 그 선물을 받아서, 오랜만에 가족들과 고기를 먹을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버스에서 냄새가 너무 이상하게 나서 집 앞에 있는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정육점 아저씨는 봉지를 열어 고기를 보자마자 역한 표정을 지으며, “아저씨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으로 오는 길에 그 고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저의 빈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보다 수천 배는 무거운 상실감이 아프게 저의 팔과 마음을 내리 누르고 있음을 느껴야 했습니다.

 

불행히도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교회 아래층에서 선교단체를 한다고 들어온 목사님이 몇 달만에 이사를 가면서 우리 교회에 쓰라고 피아노와 가구들을 선물로 주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은 교회에 행사가 있었기에 저녁에 2층에 가서 보니, 피아노는 이미 건반과 페달이 망가져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가구들도 온전한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목사님이 주변의 중고시장에서 그것을 팔려다가 안 팔리니까 우리에게 주고 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안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그 목사님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다 치우느라 용역업체를 불러서 15만원이나 허비해야 했습니다. 그날, 너무나 화가 나신 어머님은 “개척교회라고 중고 물건을 받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느냐, 다시는 중고 물건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10년간 개척교회를 도와준 고마운 손길도 종종 있었지만, 아무 말 없이 교회 앞에 두고 간 물건들 중에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것들도 많았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라고 준 옷과 신발은 대다수 제가 다시 입고 사용하기에 너무나 낡고 비참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이라도 감사하며 입고 썼지만 솔직히 말해서 선물을 받았다기 보다는 자기들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반대로 제가 사람과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주는 것이 단순히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기쁘고 받을만한 것이 되어야 하듯, 내가 주님께 드리는 것 역시 내가 그냥 의무적으로 드리는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드린 것이 주님께 받으실만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예배를 마지막 예배처럼 드립니다. 십자가 교회의 주일 예배의 첫 PPT 화면에는 “오늘 우리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예배라 생각하고 예배에 참여합시다”라는 말이 올라옵니다. 저는 모든 예배에 최선을 다합니다. 목소리를 다해, 마음을 다해, 몸을 다해 주님께 예배드립니다. 특히 금요일에는 기타를 치며 찬양하고,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한 후, 목소리를 다해서 기도합니다. 밤늦게,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면 기타를 친 손가락이 아파서 머리를 감을 수 없고, 목이 다 쉬어 말이 나오지 않아서 마치 내 몸의 단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낀 날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특히 저는 물질적인 부분에서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받을 만한 것이 되도록 몸부림쳐 왔습니다. 제가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은 아니지만, 개척 초기부터 저는 최선을 다해 주님께 헌금을 드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몇 천원 밖에 드릴 수 없었지만 매년, 기도하고 감동주시는대로 헌금의 액수를 올려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매주 5만원씩 주일 헌금과 5만원씩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주간도 있지만 저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주님께 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저는 우리 성도들과 이웃의 가정들에도 그렇게 합니다. 저희 가정의 생활비를 계산해 보면, 월급의 거의 절반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달도 생일을 맞은 성도들을 위해 30만원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10만원은 교회의 지원을 받았지만 나머지 20만원은 저의 사비였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기도하고 알아본 후에,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가장 좋은 것을,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물해 왔습니다. 선물을 한 형식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받아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을 나누어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받을만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도록, 무엇보다 이 부족한 종의 손길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자비로우심을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드려야 하냐고 묻는다면, 제가 분명히 드릴 대답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우리가 받아 누릴만한 것이 되도록 우리 보다 먼저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한계를 전혀 느끼실 필요가 없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배고픔과 목마름과 고통스러움을 받으셨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분의 희생과 사랑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해 당시에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도구인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하게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절대 우리에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 받을만한 것이 되기 위해 산제물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어쩌면 가인의 예배일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지만 어쩌면 바리새인의 기도일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헌금하고 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허식일지도 모르며 수많은 사람들이 봉사하고 있지만 법궤를 수레에 담아가다가 손을 댄 웃사처럼 자기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시 한번 이 글을 쓰면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 귀한 십자가에 합당한 인생, 받을 만하고 받아 주실만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윗과 베드로의 고백에 우리의 삶도 부끄럽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편 14절)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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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십자가교회 담임목사
나는 진짜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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