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목록

Home » 특집 » 기획 » 10.의존적 관계의 치유

10.의존적 관계의 치유

10.의존적 관계의 치유

 

동성애 바로 알기 삽화10중독의 싸이클과 이를 깨는 방법

중독에의 유혹은 처음 단계에서는 손쉽게 거절이 가능한, 죄가 아닌 형태이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유혹을 즐기게 될 때 멈추기가 불가능한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혹을 받는 동시에 마음에 죄의식이 따르면서도 이를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중독에는 촉발점이 있다. 전 동성애자 운동에서는 허기hungry, 분노angry, 외로움lonely, 피곤함tired을 의미하는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HAL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외에도 두려움, 거절감, 지루함, 그리움, 향수병, 우울, 의기소침, 무기력, 체면을 잃은 느낌, 힘에 대한 갈망, 시기심, 특정 음악, 냄새, 소리, 이미지 등의 촉발점이 있다. 이런 촉발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촉발점을 알았다면 그 유혹의 지점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촉발점에 노출된다면 더욱 유혹에 빠지기가 쉬울 것이다. 자신의 중독에 이름을 붙이고, 원인을 재규명하며, 초점을 다시 맞추고, 가치를 재점검하는 과정 또한 중독을 깨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강박장애를 깨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에서 먼저 이용되었던 방법이다(제프리 슈왈츠).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이름표 다시 붙이기: 자신의 중독 행동에 이름을 붙인 후, 그것을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 이 아니고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아니 야. 이건 내 [중독]이야.’
  • 원인 재규명: 현재 일어나는 일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나쁘다고 규정하지 말고, 내가 지 쳤고, 인정을 원하며, 외롭고, 거절감을 느낀다는 것을 말해보는 것이다.
  • 초점 다시 맞추기: 반복행동을 최소 15분 자제하면서 적극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다. 순수하고 즐거운 다른 무언가를 유혹에 자리에 대신 놓아둠으로써, 유혹이 암시 단계에 있을 때 사고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를 전위displacem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 가치 재점검: 이런 반응의 영향을 평가하고, 중독 행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 보는 것이다.

 

치유의 과정에서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구원받은 사람은 자유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된다. 우리의 의지는 묶인 데에서 풀린바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욕망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그른 것에서 옳은 것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다. 또한 치유에는 퇴보와 낙심의 기간이 있다.

 

이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 달려가야 할 시간이지, 하나님과 멀어질 시간이 아니다. 사탄은 “이거 봐. 또 넘어지잖아. 하나님이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 너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겠어. 이제 아무리 하나님께 가려고 해도 소용없어.” 귓속에 속삭인다. 그러나 걸음마 배우는 아이가 배우다 넘어졌을 때 비난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하나님은 이해하신다. 하나님은 기다려주신다. 또한 하나님은 인내하신다. 이제 내가 스스로에게 인내심을 가질 차례이다. 때로 하나님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의 약함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중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강박적으로 고리를 끊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시도가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목소리는 빛을 발한다.

 

동성 사이의 우정이 치유의 자원이 된다

“동성애 문제를 가진 교회 성도가 있다면 그의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물음에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 정체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인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정상인 남성과의 우정이 꼭 필요하지만, 너무나 많은 정상인 남성들이 이들을 피하려 하는 것은 비극이다.

 

동성애 관계를 끝맺게 될 때 여성 동성애자들에 비해 남성 동성애자들이 변화하고 싶은 동기가 더 크다. 이들은 여성 동성애자들이 갖는 끊기 힘든 감정적 관계보다는 난잡한 성행위에 더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어 다시는 이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끝내는 것은 이들에게 고통이며, 관계를 끊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상대방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크리스천 여성은 치유과정에 있는 동성애 여성에게 건강하고 성적이지 않은 우정을 제공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치유를 위해 필수적이다.

 

동성애자이나 이성애자이나 하나님이 똑 같은 흙으로 만드신 사람이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동일하게 뿌려지는 것처럼,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크리스천들은 동성애자들과 진실된 우정을 나누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정상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그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성애적인 사랑은 동성에게 인정과 우정, 안정감, 성 정체성을 구하는 행위이다. 성숙하고 정상적인 남성들과의 진실된 우정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것이 곧 치유의 자원이 된다.

 

동성애로 고민하는 사람이 관계를 맺는 중에 실수하는 것을 허용하라. 당신이 이상적으로 보여 상대방이 동성애을 느낄 수 있다고 해서 당신이 동성애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이유로 관계를 끊기보다, 그와 당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라. 사실 당신의 두려움보다 당신과의 관계를 망칠까봐 걱정하는 상대방의 두려움이 훨씬 더 크다. 두려운가? 두렵다면 공동체 내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함께 그 과정을 통과하라. 나 혼자 하기 어려운 순간에는 모세에게 아론을 동역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동역자를 주신다.

 

자존감의 회복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란 사람

충족되지 않은 필요와 낮은 자존감은 중독의 뿌리이다. 많은 동성애자들과 중독자들은 화가 난 하나님, 자신들을 비판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치유의 과정에서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실제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아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해하심이 많으시고 우리의 처지에 공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나 실패에도 불구하고 늘 우리 편에 계시며 인내하시고 부드러우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아흔아홉 마리 양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차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흔아홉 마리에 대한 예수님의 신뢰와 한 마리를 위한 예수님의 열정을 이해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등질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애타게 구하고 계시며, 하나님 곁에 머물러 있을 때에 우리를 동역자로 신뢰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또한 아흔아홉 마리를 지켜낸 것에 안주하는 목자가 아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끝까지 부르는 예수님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의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하나님에 대하여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한 태도와 같이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를 거절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낮은 자존감의 이면에는 거만, 자만, 우월감, 권위에 대항하는 태도가 있다. 낮은 자존감은 많은 결과를 낳지만, 결론적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을 사랑하거나, 자신의 이미지를 과대 포장하거나, 혹은 지배하고 학대하려는 동시에 지배당하려는(메조키즘-사디즘) 양면적인 모습으로 표출된다.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틀 안에서 왜곡되게 바라보게 된다. 비교하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 자신보다 나은 사람, 자신은 결코 따라가지 못할 존재나 자신보다 못해서 친해지기에 격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듯 스스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독특하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여 음악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존재 말이다. 일단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시는지 알게 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긍정적인 순환이 시작된다. 이를 위하여 잘못 형성된 자기의 수많은 모습과 수많은 하나님 이미지를 하나 하나 다뤄가야 한다.

 

중독자의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구타와 학대, 반복되는 성적 일탈, 여성 혐오증, 동성애와 같이 심각하나 중독이 가정에 숨겨진 경우 이런 중독은 가족에게 평생 지속될 상처를 남기며 결국 존경하고 귀중히 여기리라던 결혼의 맹세도 깨진다. 중독은 크리스천의 삶을 지옥의 삶으로 만든다. 중독자나 학대자가 있는 가정에서 중독남성이나 학대남성이 중독을 부인하고 비밀에 부치며 변화하고자 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경우라도 부부관계를 유지하기를 권유하게 되는 교회, 이에 학대를 견딜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이대로 좋은가? 교회가 학대하는 남성의 행동을 발견할 경우, 결혼생활에서 부부를 분리시키는 방법보다는 결혼을 보호하려고 한다. 이 과정이 남성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 이는 교회지도자들이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의로 여성에게 인내를 요구한다기보다, 남성간의 동질감으로 인하여 남성 학대의 수준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뭐 한 번 정도 욱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 중독 남성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이 아닌 매일 매일을 학대 속에, 혹은 학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사는 여성은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교회는 결혼 제도를 평생 지속되는 일부일처제도로 이해한다. 이런 생각은 옳고 적절하지만, 이런 헌신으로 인하여 학대라는 대가를 치르고도 결혼을 유지하려는 일은 결국 영구적인 학대를 찬성하는 것과 같다. 중독 남성이나 학대 남성과 결혼하는 여성은 고난에 대하여 혼돈된 개념을 갖고 있다. 남편의 중독과 학대를 견뎌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절망적 행동에 걸려든 것일 뿐 남편을 사랑하거나 남편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인내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크리스천은 동반 의존의 덫에 빠지기 쉽고, 구조자의 역할에 빠지기가 쉽다. 이는 중독을 부추기는 것일 뿐이다.

 

이런 학대관계에서조차 교회는 순종을 요구할 때가 있다. 고통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는 도움이라기보다 해를 끼치는 것이다. 학대관계에 있는 크리스천 관계 중독자들은 학대관계를 수용하며 순종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돌아서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너무나도 귀하게 여기시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을 학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살펴보자. 머리됨의 진정한 의미는 다스림이나 지배에 있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를 희생하며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 즉 섬김에 있다(골 2:19). 적대적으로 지배하고 학대하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요구하지도 않은 일을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첫 번째 계명이자 가장 중요한 일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마 22:37)하는 일이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흐르므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마 22:39)이다. 또한 남자는 아내를 ‘제 몸 사랑하듯’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내도 이웃도 사랑할 수 없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신을 숨기는 가면 없이도 완전히 편안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결혼 생활은 이런 방식을 갖지 못한다. 부분적으로 불완전하더라도 이와 같은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방향을 돌리는 일이며, 불완전함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우리는 파괴적인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것인가?

전 동성애자들은 보통 5년 정도는 감정 의존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동성애 단계나 감정의존의 단계에서 결혼을 하기도 하는데 이 때 동성애로 인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가족들이 겪을 수 있다. 배우자의 구조자, 구원자로서 역할하고자 하는 사람은 본인의 우월감을 충족시킬 뿐이며, 중독의 경우 배우자를 통해 구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의존을 부추길 뿐이다.

 

관계중독이 되기 쉬운, 자존감이 낮은 여성이 사랑을 찾을 때 어떻게 하면 이런 학대적인 관계를 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을 알아야한다. 나는 특정 종류의 관계에 빠져드는 사람인가? 자신을 못살게 구는 문제 남성이나 자신이 도울 수 있다고 믿는 문제 남성과 관계를 맺는가? 자신의 가정에도 유사한 삶의 문제가 있는가? 남자를 제대로 알아보고 특정한 종류의 남성과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서는 시잔이 걸리더라도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발전시켜야한다.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분별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을 구분하려면 아버지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익숙해져야 한다. 관계 중독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은 위험한 경우가 많다.

 

여성의 의존 성향은 학대 성향의 남성을 찾아내게 만든다. 문제의 근원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 불안정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며,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하는 결혼은 보통의 가정과 같이 행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 과정을 겪는 중에 충동적으로 결혼하는 것보다는 회복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경험은 결핍으로 인한 선택을 막을 것이다. 결혼은 신성하고, 건강하며, 친밀하고, 소중하며, 즐거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결혼은 결혼을 제도적 방패로 삼아 그 뒤에서 학대가 계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관계 중독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

마음 속 가장 깊은 두려움 가운데 함께 계신 예수님을 만나라. 관계 중독자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은 두려움이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다. 두려움은 가정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중독자인 부모의 독재 아래 다스려진 가정의 혼돈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고, 학대 때문이기도 하며, 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길만이 사랑받을 수 있는 방식임을 배우며 자란 아이의 집안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사랑이 결여되거나 거부되었던 가정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자기 허기를 채우기 위해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하게 되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협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동반의존적인 사람이 통제하려드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늘 필요한 사람(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강하게 보이거나 책임지려는 태도를 멈추라고 하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을 아무런 방어막 없이 어린 시절의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일과 같다. 이런 통제가 제대로 다루어지려면 “통제하지 말라”는 설교보다 ‘강한 척하지만 약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강함의 가면 뒤에 있는 초라한 자기 자신,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나고, 그 초라한 자신과 동행하는 예수님을 깨달은 후에야 통제행동을 다룰 수 있다.

 

내적 치유의 경험을 통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신, 위로하시는, 귀히 여겨 주시며,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회복할 때, 자신의 자존감에 대한 작업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자신 안의 사랑의 필요를 채우고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하는 행동은 사실은 우상숭배이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치유의 과정을 통해 많은 중독 경향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고백하는 일이 쉬워진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했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랑을 추구했어요. 이것은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는 우상 숭배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저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도와주시고, 다른 사랑에 빠져 있지 않도록, 제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도와주세요.”

 

묵은 분노가 터져나올 때, 이 때야 말로 치유가 시작되는 때

동반 의존자, 중독자, 동성애자들이 경험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데에는 두려움이 작용하지만, 그 고통이 표면에 떠오르게 되면 매우 깊은 분노를 느낀다. 이 분노 때문에 비명을 질러댄다. 이런 분노는 어린 시절부터 묵혀온 분노이기 때문에 매우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중독 성향의 뿌리를 보게 되면, 그 자리가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한 자리다. 그 자리에서 마음 아파하시며 치유를 원하시며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할 때 두려움과 분노의 어마어마한 바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치유의 경험은 이제 주위 사람들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대신에 ‘그 때 이런 것이 내게 상처가 되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분노라도 하나님께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분노 때문에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분노 자체에만 몰두하지 않고, 그 분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있는 우리 안의 깊은 두려움을 볼 수 있다. 그 두려움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서, 두려움을 들어주시고 감싸주시며, 분노를 포기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두려움의 공간에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 차게 되면 방어적이고 조정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고 단념하고 용서하는 일이 쉬워진다.

 

회복의 필수 단계(로빈 노우드)

  • 도움을 요청하라.
  •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라
  • 지원 그룹에 참여하라
  • 영성을 계발하라
  • 보살핌을 멈추라(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하지 말라)
  • 구조자, 학대자, 희생자가 등장하는 역할 놀이에 현혹되지 말라
  •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라
  • 마음에서 일어난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가꾸어 나가라
  • 이기적이 되라. 자기 중심적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당신 자신도 중요한 사람이라 는 의미이며,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 다른 사람과 문제를 나누라

 

동반의존 여성들이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

  •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라
  • 자신의 나쁜 면을 보여주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 제 3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대화하기 시작하라
  • 정상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찾도록 노력하라.
  • 완벽주의적인 기대를 버리라
  • 자신이 이기적이 되는 것을 용납하라. 새 옷도 사고, 머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취미활동 도 가지라
  • 노는 법을 배우고 재미를 알라. 지나친 책임감에서 벗어나 놀면서 쉬라
  • 완벽한 결혼 생활에 대한 꿈을 버리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자신에게 허락하라
  • 당신을 사랑해 주고 당신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라.
  • 당신의 지성에는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라. 당신은 다만 자신감을 상실했을 뿐이다.
  • 관계에 대해 스스로에게 철저하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하라.

 

치유의 마지막 단계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게 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들은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상 그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나 자신과 바꾸지 않겠어요. 머리카락 한 올 조차도.”

 

존경받는 교회 중독자가 없는 교회인가, 중독자를 품는 교회인가!

교회는 죄인이 없는 존경받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죄인들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위선자로 남아 존경받는 교회가 될 것인가, 솔직한 회개가 충만한 죄인들의 교회가 될 것인가? 이 문제에서 많은 교회들은 교회와 목회자와 교인들의 문제를 부인하며 존경받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죄 된 충동을 부인하는 것은 죄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며 회개를 쫓아내는 것이다. 바로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죄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예수님마저 내쫓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어두움은 더욱 깊어지며 더 많은 악이 우리 안에 둥지를 틀게 된다. 과거에 동성애였던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으며, 이제 올바른 방식으로 이런 필요를 충족시켜야 함을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교회 안의 정신과 의사, 상담가 등의 정신 의료 전문가들은, 비밀스러운 욕망과 고집스러운 중독을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거치며 동성애자들의 문제 해결을 도울 준비를 해야 한다. 이야말로 존경받는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예수님은 죄로 병든 사람들의 위대한 치료자였다. 이런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간 이후에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은 목마른 우리들에게 샘물과도 같은 말씀이다.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때, 심신의 질병의 뿌리가 제거되기 시작한다.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복음주의적인 영성은 ‘실제적이고, 이성적이며, 지성에 근거하고, 신학적인 영성’이기 때문에 이런 기적적인 예수님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결핍된 영혼을 치유하는 핵심일 것이다. 교회는 치유의 사역을 담당함에 있어 천천히 전진할 필요가 있다. 동성애를 이해하고, 동성애에 대해 교회를 교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사랑의 결핍을 느끼며, 중독적인 성향이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과정과 동성애를 다루는 과정을 다른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교육의 핵심 포인트이다. 중독의 문제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이 문제를 내려놓는 경험을 할 때, 우리 중 그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판단하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뀐다.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 가면을 벗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그 가면을 유지하고 싶어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치유자로서 우리는 가면 속에 있는 한 사람을 이해해야 하며, 가면 속의 모습 그대로 수용하며 그 모습을 위해 헌신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말이다.

 

Print Friendly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크로스로

Editor at crosslow

서로 다른 생각을 잇는 두바퀴

이 게시물을 공유하기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