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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치유, 이성과 마음이 더해져야한다

9 . 치유, 이성과 마음이 더해져야한다

 

동성애 바로 알기 삽화92,000년 전의 치유자? 지금도 치유자!

동성애의 치유는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과정이다. 많은 중독의 치유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교회는 기도나 성경읽기, 성경공부 같은 이성적인 과정에 편향되어 있다. 상상을 사용하고, 상징을 사용하는 머리와 마음이 통합된 ‘성경적인 마음’의 경험은 치유를 촉발할 것이다. 교회는 위선적인 모습의 존경받는 교회로써의 가치보다 죄인들의 교회로써의 가치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이 순간에도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그들과는 달라’라고 부인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부인하는 것 자체가 당신이 죄인이라는 증거이다.

위대한 치유자 예수님은 2,000년 전 가난한 자들 즉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시며 세상을 돌아다니셨다. 이사야서에 나타나 있듯이 그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싸매며, 눈먼 자를 보게 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고난으로 억압받고 학대받고 상처받고 짓밟히고 깨진 사람들, 모든 슬퍼하는 자와 애곡하는 자들을 위로하셨다. 그리고 재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기쁨을, 근심대신 찬송을 주겠노라 (이사야 61: 1~3) 하셨다.

 

오늘 날의 신자들은 예수님 당시 제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은 아버지와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가 허락하기만 하면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예수께서 위임하신 이사야서의 내용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깨진 마음을 치유하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때 중독과 정신적, 도덕적 감정적 연약함과 심신의 질병의 뿌리가 제거 되기 시작한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모든 건강 이상의 30~90% 정도가 이런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성에 치중하게 된 역사 머리와 마음 사이의 분리

본래 ‘머리’와 ‘마음’은 붙어 있었으나, 크리스천의 사고가 머리와 마음을 분리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가 부활한 13세기의 교회에서는 영적인 지각이 아닌 오감과 이성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만이 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14세기 경건주의와 17, 18세기 이성의 시대를 거쳐 머리와 마음의 분리는 강화되었다.

 

개신교의 영성은 신비주의에 대한 불신의 경향이 있지만, 사실 신비주의는 종교적으로 사고하면서 느끼고자 하는 습관이나 경향이며, 마음과 머리를 동시에 사용하여 하나님을 깨닫는 방식이다. 우리는 보다 무의식적이고 상징적이고 느낌을 중시하는 ‘마음’ 위에서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머리’를 작동시킨다. 마음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무력화시키며, 메마른 신학과 종교의 구조 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모습이 우리가 보이는 오류이다.

 

교회가 무의식적 사고를 이해하고 무의식을 통해 말하도록 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생긴 빈 공간은 심리학으로 채워지고 있다. 심리 치료사들은 영혼의 치유자로서의 교역자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으며,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이제 교회보다 더 훌륭하게 마음의 언어를 이해해 낸다. 그러나 이런 학문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틀 밖에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잘못된 치료법을 처방하고 있다. 다음은 C.S. 루이스의 말인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에 대하여 기독교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은 단순히 개선되어야 할 불완전한 창조물이 아니다. 그는 반드시 무기를 놓고 항복해야 할 폭도다.”

 

성경에서의 마음

성경에서는 ‘머리와 마음’ ‘머리의 지식과 마음의 지식’,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단절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은 이 모두를 통칭하여 마음이라고 부른다. 성경적 마음은 의식적이고, 감정적이고, 이성적이다. 성경적 마음은 사고하고 기뻐하고 논증하고 의심하며, 계획하고 설계하며, 환호하고 기뻐하며, 애통해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한다. 그러나 마음은 무의식적이며 가장 깊은 동기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런 나머지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다양한 심리학 이론은 단지 그 마음을 알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을 아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아시고(눅 16:15), 마음을 감찰하시고(롬 8:27), 마음을 치유하실 수 있다(렘 30:17)고 말한다. 이 때의 치유(sozo:save, soteria:salvation)는 항상 전인적인 것이며, 치유는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을 포함한 마음 전체에서 일어난다.

 

상상 마음의 언어

기독교적인 배경에서는 상상력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이 비유나 상징을 사용하셨고, 선지자들 역시 환상을 통해 예언을 하였다는 사실은 이성적인 오늘날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한정적인가를 보여준다. 성경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성경의 장면을 실제로 상상하는 과정은 우리의 경험을 훨씬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장면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 장면에서 성경 속 인물이 무엇을 느끼는지 상상해 본다면, 우리 마음 속 상상의 언어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 마음 속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면서 상상하거나, 자기가 가장 두려운 장면을 다시 떠올려 경험해 보는 것, 내 가장 약한 속내에 하나님을 초대하기 등은 상상을 통한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고 기도하라는 이성적인 접근은 반쪽 난 갑옷을 주고 화살 밭인 전장으로 내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치유의 과정에는 지성뿐 아니라 마음의 고유한 대화가 필요하다. 이는 상상을 통해 촉발될 수 있다. 의식적이고 분석적인 머리만으로도,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느끼는 마음 만으로도 ‘성경적 마음’을 이룰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이성과 마음이 함께 있는 ‘모든 마음, 온전한 마음’이어야 한다.

 

동성애 및 중독의 치유과정에서 인정해야 할 것들

  • 동성애나 중독적 성향을 의지로 이겨내려 했지만 지금껏 별 소용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그 럴 가능성이 높다. 의지가 조금만 더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문제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쪽의 마음이 원하지 않는 쪽의 마음보다 더 강하다. 즉 충족되지 못한 결핍이, 행 동을 멈출 의지력보다 강하다.
  •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당신의 문제 해결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시지만, 그렇다고 중독에서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숨길 경우 보통 실패하게 된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동성애 및 중독의 치유과정에서 필요한 것들

  • 개인적 동기.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태도
  • 빈 사랑의 저장 탱크를 중독적인 대체물에 집착함으로써 채우려고 했던 영적인 문제를 알 게 되었다면, 친절하시고 이해심이 많으신 하나님께 항복하고 의지하기
  • 지원그룹은 중독 회복 프로그램에 있어 필수적이다. 지원 그룹은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상 황을 알릴 수 있는 안전한 곳이다. 그곳에서는 수용과 이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 상 문제가 없는 척 할 필요가 없다.
  • 믿을만한 리더에게 자신의 형편을 알리고, 성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대신 자 기 감정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정당한 방법으로 필요를 충족시키기로 결심한다.
  • 솔직함: 문제를 부인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기.
  • 용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복수로 자신을 이용하지 말기
  • 회복: 개선하기
  • 인내: 회복은 과정이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단번에 변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 것. 치유는 생각하고 단지 성행위를 안 하는 것 이상이다. 생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변화 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 심리상담: 치료자의 깊은 이해를 동성애적 반응을 부추기는 태도로 오해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 깊이 들여다보고 통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성친구, 혹은 조언자. 무슨 말을 해도 당황하지 않고, 성적인 해프닝이 없을 안전한 친구 는, 당신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성애 및 중독의 치유과정에서 해야 할 일들

  • 중독과 충족되지 못한 필요와 지신의 치유에 대해 책임지기
  • 문제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기.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을 그렇게 규정해 버리는 것 은 다르다. 자신을 ‘중독자’라고 정의하지 말고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 여기라
  • 중독으로 돌아가는 탈출구의 문을 봉쇄하라. 모든 가능성을 없애라. 사람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작은 문에도 쉽게 흔들린다.
  •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 어떤 때에 중독적 욕구가 더욱 나타나는지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회복에서 핵심적 이다. 중독을 촉발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피하려고 노력하라.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당신을 자극하는 중독 촉발 원인이 아니다. 유혹은 유혹일 뿐, 죄로 발전하지 않도록 한다.
  • 이성애라는 목표를 추종하지 말라. 이성애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당신의 목표는 충족받지 못한 필요를 정상적으로 채우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치유이다.

 

중독의 치료과정에서의 열 두 단계 프로그램

  • 중독의 발생과 중독 대상 앞에 자기의 무력함 인정하기
  • 우리의 삶이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인정하기
  •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항복하기
  • 스스로를 감찰하며, 두려움 없이 도덕적으로 자신을 점검해 보기
  •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정확한 본질을 인정하기
  • 이런 성격적 결함을 없애기로 합의하기
  • 신께서 우리의 결함을 없애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기
  • 우리와 우리의 중독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목록 작성하기
  • 즉각적인 수정
  • 자기 점검을 계속하며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는 태도 증진하기
  • 하나님과 보다 친밀한 관계 추구하기
  •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메시지 전하기

 

치유의 시작, 회개

회개는 인간이 사용하는 어휘 중 가장 중요한 의미가 담긴 단어 중 하나다. 회개 안에는 우리가 늘 바라왔던 모든 것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다. 회개는 진정한 자존감을 위해 필수적이며, 깊고 지속적인 치유의 과정을 위한 본질적인 단계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마음을 가장 기뻐하시며,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회개는 부모를 떠난 아이가 “내 방식대로 살아온 것 정말 잘못했어요. 엄마 아빠 품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부모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탕자처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문제의 뿌리는 중독이 아닌 하나님과의 분리였으며, 하나님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태도는 하나님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하마르티아harmartia 혹은 죄라 하며, 이는 과녁에서 빗나갔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유일한 처방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하고 멀어진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하는 진심어린 사과가 바로 회개이다. 회개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 품안에서 마음껏 느낄 수 있다. 회개와 진심어린 항복이 없다면 우리는 중독의 굴레에서 전전할 수밖에 없다. 화난 하나님의 모습에 하나님 앞에 두려움에 떨며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단지 두려움 속에 자신을 묶어두는 것이며, 이는 실패를 부른다. 다시 한 번 기억하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를 정죄하지도 않으신다. 단지 우리가 돌이키기를 바라실 뿐이다.

 

자신의 중독에 책임지기

자신의 중독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 분명 중독 성향을 불러일으키는 결핍이 있었고, 중독을 가진 자신이 이해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거두고, 거부하고, 용서하지 않고, 악의를 가지고, 화를 냈던 반응은 자신의 잘못이다. 잘못된 반응과 선택을 반복하며 중독적 성향을 발전시킨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치유 과정 중에 우리의 모습을 다른 문제나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우리가 타락한 것은 우리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였다가 긴 과정을 거쳐 동성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전 동성애자의 이 시는 중독의 책임 전가 가능성과, 잘못을 자기의 것으로 책임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길 가에 깊은 구덩이가 있었네

나는 빠졌지

빠져 나갈 수가 없었어

아무 소용이 없었지

내 잘못이 아니었다네

빠져나가려면 한 평생이 걸리겠지

 

나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네

길 가에 깊은 구덩이가 있었지

나는 구덩이를 못 본 척 했어

나는 다시 빠졌지

다시 빠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

그렇지만 내 잘못은 아니었다네

빠져나가려면 또 한 평생이 걸리겠지

 

나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네

나는 다시 빠졌지

습관과 같았어

눈을 떠봤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지

내 잘못 때문이었다네

나는 즉시 빠져나올 수 있었지

 

나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네

나는 똑같이 깊은 구덩이를 보았지

나는 구덩이를 돌아갔다네

 

자유의 시작, 용서

용서 없이는 치유도 없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상처 입힌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용서는 우리에게 그들이 진 빚을 탕감하는 일이다. 용서는 그들이 잘못했지만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도 잘못을 저지르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듯이 말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편견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공격받지 않은 경우에도 공격받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바로 그 사람을 닮게 만든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우리를 옥죄어 온다(마 18:34).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편이 낫다.

용서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고 용서의 마음이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용서의 과정 역시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어떻게 쉽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용서를 결심하기까지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난 용서는 내 올무를 끊어뜨리는 행위이다. 용서는 가해자의 잘못된 행위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용서는 가해자의 잘못된 행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에 영향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용서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개방: 자신의 상처를 개방하고, 그 상처로 인한 자신의 분노, 슬픔, 절망, 증오 등의 감정 을 개방한다.
  • 결심: 용서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 작업: 상처를 준 가해자를 이해하고, 가해자를 이해하면서 내가 가해자에게 품은 측은지심 을 인정하도록 노력하며, 내가 받은 고통을 수용하는 작업이다. 더 이상 가해자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고 자신의 고통의 책임을 스스로 지는 과정이다. 많은 경우, 가해 자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면서도, 이를 부인하려는 경우가 많다. 측은지심을 갖는 것 이 내 고통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측은지심을 갖게 되면서 가해자의 죄가 묽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에 대해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르짖는 신음은 용서의 과정에서 필연적이다.
  • 발견: 용서의 과정을 통해 얻는 자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용서의 과정은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며, 자신도 때로 다른 사람의 용서를 구해야 할 가해자임을 발견하게 하 며, 용서의 과정을 도와준 친구들과 자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하게 하며, 결국 용서가 주는 자유를 발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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