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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회와 동성애

7. 교회와 동성애

 

동성애 바로 알기 삽화7동성애에 대한 보수주의, 자유주의 교회 입장

  • 자유주의 교회

자유주의자들은 사랑의 언어를 말한다. 이들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이다. 자유주의 교회는 억압, 차별, 불의,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에 격분하고 자존감, 존엄, 인권, 자기실현, 권익 향상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자유주의 교회는 동성애자들이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가 자기 속내를 털어놓을 때 자유주의 교회는 이들을 용납하며 열린 마음으로 반응한다.

 

자유주의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용납한다는 점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 동성애 행위를 금지하는 성경 말씀은 사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또한 그런 태도는 동성애자가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성애 운동이 침투한 교회는 동성애를 합리화하며 심지어는 조장한다. 자유주의 교회는 보수주의 교회보다 동성애자들과 더 많이 교류함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동성애자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 교회의 현주소이다.

 

2) 보수주의 교회

성경은 동성애가 그릇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동성애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보수주의 크리스천들이 자신이 종종 성경을 자기 의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구분하여 정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동성애자를 덫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마치 적이라도 되는 듯이 대하며 소외시키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동성애자들은 보수주의 교회에서 거절감을 느낄 때 하나님이 자기를 거부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로 규정하면서, 나는 버림받도록 창조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림받도록 창조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

 

보수주의 교회가 우리를 돕기 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 죄인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 죄로 멀어진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신 예수님을 믿고 죄인의 변화됨을 믿는 것은 변화하고자 하는 동성애자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런 믿음을 가진 보수주의 교회가 자유주의 교회의 관심, 우정, 무비판 등의 개념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동성애자를 수용하면서도 동성애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질 것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가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열린 러브인액션 정기 모임에 참여했던 2,000여명의 동성애자들 중 약 70%가 교히에 소속되려고 진지하게 노력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많은 교회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거나 경멸을 당했고 일부는 자신들을 공개적으로 적대시했다고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미워하는 것은 강경파 동성애자들이지만 많은 동성애자들이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평신도만이 아니다. 목사, 목회 지도자, 교회 사역에 중심이 된 사람들도 포함되어있다.

 

우리에게는 동성애 문제가 없다고 부인하는 교회들

많은 교회가 동성애 성향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구성원의 존재를 부인한다. “우리 교회는 성경을 믿는 복음주의 교회예요. 우리 교회에서 동성애는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동성애자의 아버지 중 많은 수가 전문인이나 목회자, 상담가이고 의사와 변호사인 실정은 교회 목회자의 가정 역시 동성애 문제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회자 아버지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느라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녀에 대한 기대는 높고, 타협의 여지는 두지 않았으며, 자기만 옳다는 태도를 취하는 편이었다. 자녀가 동성애자인 목사는 그런 자녀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되뇌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명백한 부인이다.

 

또한 교회는 동성애자들에게 많은 편견을 가진다. 동성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동성애 상담과정에 참여하고 돌아온 남성이 보수적인 소속교회에서 거절당하거나 교회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당하는 일은 흔하다. 동성애 문제로 도움을 구하기 위해 단체에 등록된 사실이 일단 목회자에게 알려지면 이들은 교회에서 배척된다. 고용주가 사실을 알게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다가가자 무슨 해라도 당할까 두려운 어머니들이 자녀를 잽싸게 낚아챈다거나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경험들이 있다. 기독교 신문에 실린 독자들의 편지 중 동성애에 관한 내용에는 “주님 앞에 용납 받지 못할 남색”, “천국에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등등의 내용이 있다. 이런 글을 쓴 사람들이 나무랄 데 없는 크리스천들일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상태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 때문에 동성애자들에겐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상처받은 영혼은 자신을 편견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더욱 상처를 받게 된다. 동성애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동성애로 고민하는 남성돠 여성이 존재할 뿐이라는 전 동성애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교회는 동성애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가?

일반적인 통계수치에 따르면 열 곳의 교회 중 아홉 곳이 동성애가 바뀔 수ㅊ있음을 믿지 않거나 모른다고 한다. 다음은 동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문제로 도움을 구했을 때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대답이다.

“당신의 성정체성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실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유감입니다. 교회를 떠나주셔야 겠습니다.”

“당신에게는 하자가 있어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군요.”

“이곳에서 예배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해주세요.”

“감정을 조절하고 금욕적인 삶을 사세요.”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교회 열곳 중 한 곳은 그 방법을 몰랐고 교회엣 사실을 공개하느 것을 금지 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쁜 여자를 찾아서 결혼하세요.”라고 충고하거나 특정교리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그런 후에는 “한방”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들을 제시했다 “이제 당신은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패했습니다. 옛것은 지나가고 모두 새것이 되었지요. 당신은 죄를 이길 힘이 있어요. 그러니 멈추기만 하면 되요. 이제는 예수님이 당신 안에 사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행동을 하실 리가 없지요.” 이런 말 자체는 모두 옳지만 상황에 적절한 말은 아니다. 교회는 종종 “한 방을 사용한다. 동성애처럼 다루기 어려운 문제에 한방에 해결이 가능한 손쉬운 해답을 제시하면 교회는 그 즉시 당사자와 그의 문제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전 동성애자들은 “제가 아는 한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간단한 기도 한 번으로 한 방에 동성에게서 벗어나도록 하신 경우는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동성애자들은 한방에 변화되지 않는다.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내 과정이다.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과정이지만 점진적으로는 엄청난 변화를 이루어낸다. 회심 후 6개월, 혹은 그 이상 동성애적 욕구가 사라지게 되는 겨우도 종종 보게 되는데 교회나 목회자는 여기에 속아서는 안된다.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난 듯 보이지만 치유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유혹은 다시 찾아오게 되고 그 때가 바로 전 동성애자가 구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얻어야하는 때이다. 동성애의 성향을 만든 뿌리를 찾아내는 중대한 작업을 할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방법을 모를 때 그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겨질 수있다. 그는 자신의 문제와 실패를 나누기 두려워 치유되지 않았음에도 치유된 척 행동할 것이다. 교회 남성들이 그를 피하는 환경에서라면 더욱 그럴 확률이 높아진다. 그는 남성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단지 유혹이 떠오른 것 만으로도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그는 점진적으로 다시 동성에 상황이 제공하는 인정과 과거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또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정상인처럼 행동하며 주중에는 청년 모임을 이끄는 한편 자신의 위선을 감당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동성애자의 삶을 산다.

 

커밍아웃한 교인을 대하는 교회의 모습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엘리엇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후 더 이상 다니던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아니 다닐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비판적인 분이셨고 엘리엇은 이 때문에 아버지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어린시절부터 남자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원했던 엘리엇은 부모님이 선교지에서 돌아온 후 정착한 미국에서 유명한 10대 찬양사역자에게 향하는 마음에 몸부림치며 땀이 흐를 때 까지 기도를 했다. 그는 “달라지고 싶고 변화되고 싶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적 고통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엘리엇은 지옥 같은 경험을 하고 1년 뒤 열일곱 살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네가 어떻게!”라며 우시고 아버지는 예의 그 차가운 비판과 모든 것을 분석하려는 태도를 보이셨고 얼마 후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방문해서는 “기도로 해방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교회 교인의 신분을 잃을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돌아온 후 절친했던 친구들이 아무도 자신에게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온정과 격려는 없었다. 엘리엇은 그 때 누군가가 “괜찮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괜찮아.” 같은 말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교회에서는 엘리엇의 교인 자격을 논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엘리엇에게 주어진 것은 비판과 두려움과 무시였다. 그동안 선교사의 아들이라며 그렇게 따뜻하고 좋아해주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그는 모든 친구를 잃었다.

 

엘리엇은 동성애자 생활을 하면서 성경과 삶의 방식 간에 아무런 충돌도 일으키지 않는 동성애신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엘리엇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같은 남성이 사랑을 열망했다. 하나님에 대한 엘리엇의 생각에는 거리감이 느껴지고 냉담하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되어있었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는 듯 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결론을 내렸을 때 엘리엇을 지지해주던 환경은 부서지기 시작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어져버렸다. 율법과 사랑을 얻고자하는 욕망위에 세워진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가 지탱하기에는 너무나도 깨지기 쉬운 것이었다. 동성애 성향을 지닌 수 천명의 진실한 크리스천 남성과 여성도 엘리엇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원하지도 않는 성향에 대항해서 크리스천으로 할 수 있는 최대로 몸부림치고 예수님을 따르고 성결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나 교회가 자신의 친구이기보다는 적으로 느껴졌다고 말이다. 엘리엇의 교회도 다른 교회처럼 진실하고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만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알지 못했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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